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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14 무제
  2. 2017.07.20 축적의 시간 2
  3. 2014.08.29 2014.08.29
  4. 2014.08.24 2014.08.23
  5. 2014.06.23 2014.06.23
  6. 2014.04.10 2014.04.09
  7. 2014.02.01 2014.02.011
  8. 2013.12.02 2013. 12. 02.
  9. 2013.03.02 2012. 03. 02
  10. 2013.02.21 2013년 2월 21일

무제

한동안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 주영이가 태어난 해(2014년)8월의 글이 마지막이었고, 오늘이 2020년 6월 14일이니 6년 하고도 2개월 여 만의 글 작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의 제목은 무제이다. 굳이 날자를 넣고 일기로 소소하게 적기에는 그간의 시간적 공백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6년 간 나의 삶은 어떠했는지...6년 전보다 더 지리멸렬하지는 않았나 생각한다. 한 아이가 태어타고 그 다음 아이가 태어나고, 집을 이사하고, 연구소에서 사업부로 직장을 옮기고, 교회가 이사를 하고, 시편송 1집이 발매되고...꽤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혹은 그 많은 이벤트를 거치며 나는 그저 노화한 것인가, 더욱 깊어진 것인가...굳이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판단은 남이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반반인 듯 싶다. 내가 거쳐간 삶의 궤적이라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체험이며 상대적인 인식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 상대적 인식의 틀이 객관성을 띈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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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의 시간 2

축적의 시간
Know why
Scale up
인사이트가 상당하다
기록의 축적
타인의 지식
천재가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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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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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3

8월이 거진 끝나가고 늦은 장마가 왔다 살짝 날씨가 개인 토요일이다. 주영이가 태어난지도 60일이 넘었고 다음 달이면 100일이 된다. 피부에 조금 난 것들이 있지만 아토피가 아니고, 밤에 보채지만 젖먹고 바로 자기 때문에 다행이다. 내일은 드디어 주영이를 데리고 서울로 교회를 간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 늘 시간이 지나지만 그만큼 올해의 지나감은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가정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또 종교적으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일련의 일들은 관조하며 답답함이 너무도 많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건, 총기 난사, 구타, 교황 방한, 개신교계 문제들 등.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이든 문제든 바른 사실판단 위에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것들이 사실판단도 안되고 있다. 또 문제나 현상의 인식에 있어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는다. 피상적 현상이나 겉모습으로 문제를 인식해버리고, 문제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지 않는다. 가령 교황 혹은 교종의 경우, 많은 개신교인들이 그에 대해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 그가 서구 종교의 우두머리로 일반론적인 윤리의 테두리에서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종교인으로서의 사회책임을 독려하기 때문이다. 양심있는 세계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은총적인 잣대로 교황 혹은 교종을 판단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판단이며 그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양심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녀로서 판단한다면 그닥 바르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독교를 땅의 종교로 만들었고, 기독교를 세상의 일반적인 종교의 하나로 인식시키며, 성인과 마리아를 공경의 대상으로 삼고, 중보자 예수그리스도를 대리할 권리가 없음에도 대리하여 고해성사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로만 카톨릭의 체계를 그대로 답습한다. 바른 정통신학의 터 위에서 바른 신앙을 가졌다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부분에서 잘못됬음을 알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문제의 본질은 윤리 도덕이 아니다. 바른 신학이 본질이다. 개신교계 내부 문제 역시 그러하다. 부정 부패는 문제이지만 그것은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의 터가 무너지고 바른 교회법이 시행되지 못함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인 것이다. 우린 본질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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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014년 6월 4일, 아들 주영(朱榮)이가 태어났다. "태어나다"란 개념, 참 모호한 듯 하긴 하다. 이미 10달 전에 엄마 뱃속에서 생명체로서 시작 되어서 더 이상 엄마 뱃속이 있기에 적당한 환경이 아니어서 환경을 옮기는 것이니까 말이다. 때론 그래서 이 "개념"으로 논란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쨋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 주영이가 태어났다. 대한민국에서, 대전에서, 김영찬과 박혜진의 자녀로 세상에 선을 보였다. 아이와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은 말도 못할 벅찬 감격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20여일이 지난 지금,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아버지로서 자격이 있나. 아버지라는 건 뭔가. 힘든 이야기인 거 같다. 나의 모습이 위치가 되돌아 보게 되는 나의 본질이 앙금이 가라앉아 있는 투명한 듯 보이는 물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가 친가에 있고 혼자 집에 있는 지금, 혼자 있는 순간 더더욱 생각하게 된다. 혼자 있는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속적인 심심함, 외로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가? 그러는게 바람직한가? 반추해보면 잠잠해진다. 잠잠해질 수 밖에 없다. 

다음 주말이면 주영이가 본격적으로 나와 동거를 시작한다. 주영이와 함께하는 삶,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거다. 마냥 희망적일 수도 없고, 마냥 비관적일 수도 없고, 마냥 집착해서도 안되고, 마냥 무관심과 방관도 안된다. 그저 바른 지식의 근간 위에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는 길 밖에는 없다. 그 속에서 나그네이지만 주인의식있는 군사로 전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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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2014년 4월 9일. 5분 후이면 4월 10일이다. 시간의 갈림길. 물처럼 지나가 버리며 공기처럼 잡히지 않지만 유유히 흘러간다. 그렇게 나이도 먹어간다. 7월이 되면 세상에 나온 아들이 있을 것이고 그로부터 10년 뒤가 된다면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별다른 일 없이 지금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특별한 일 없이 진급한다면 과장 말년차나 차장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럴 거라는 생각, 어리석으면서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시간 위에서 볼 수 없지만 볼 수 있다고 믿는게 인간이다.

 

최근 회사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에서 상대적으로 싸길래 구매한 로드바이크다. 정확히 말하면 유사 로드바이크. 그래도 돈을 최소로 들이면서도 제대로 타고 다니려고 스스로 정비와 세팅을 하면서 타고 있다. 그러면서 너무 그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많은 시간 자전거 관련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생각하고 마치 삶의 원동력이나 메인이 자전거인듯 수위를 넘은 것 같다. 오늘 아버지에게도 무언가 충고를 받았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만 가만 되새겨 본다. 그래 나의 삶은 혹은 나의 삶의 자리의 중심은 자전거니 돈이니 그런 것들이 아니어야 한다. 세상적 가치관이 아니어야 한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치열한 혹은 처절한 붙잡음이 없는 순간은 죽어버린 것이다. 무엇을 하든 그것의 결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현재의 것들에 그것을 위하여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별되어야 한다. 그저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을 위하여 따라서 모든 것에 내가 주인이상의 인식과 시야를 가지고 해 나가야만 한다. 늘 그것이 부족하다. 그것을 가져야 소위 말하는 인사이트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내일 모레는 회사 창립기념일로 휴일이어서 와이프와 바람쐬러 간다. 1박 2일로 간단히 잡은 일정 속에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듯하다. 허락하심 안이라면 말이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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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1

오늘은 2014년 구정 연휴의 마지막 날 입니다. 요 몇일간 바쁜 나날을 보낸 집사람은 배가 부른 채로 비 내리는 저기압에 눌린 듯이 잠이 쏟아진다며 거실 소파에 누워 잠에 들어 있습니다. 뭐랄까 잠을 많이 잤으면서도 나도 잠이 계속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색하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최 뭔지.

 

내일이면 예배 드리러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옵니다. 저녁엔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고 월요일이 되면 회사에 다시 출근 하겠지요. 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팀회의가 있네요. 논의하고 계획을 세워야 할 안건들이 있어서 회의가 짧게 진행되진 않을 것 같네요. 아침에 회사에 가자마자 전자현미경 예약을 해야할 듯 하구요.

 

저는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사람입니다.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을 검증해보지 않고는 단번에 믿지를 않지요. 사람들 이야기도 마찬가지구요. 장점일수도 단점일수도 있는 습관이지요.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까칠해 보인다는 겉인상을 주기 쉽지요. 특히 기독교적 진리와 관계된 이야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권위"와 상관없이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가치판단을 마친 후에 받아 들이지요. 그러다보니 더욱 더 견고한 '기준'이 마련되고 그 라인 밖의 지식은 마구 내쳐버리지요. 때론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지식과 사상이지 사람은 아니라고. 한 사람은 소중한 영혼이라고.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 그렇지만 그 생각 자체를 자주 잊어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매 순간 간구해야 할 부분이지요.

 

요즘 아버지의 "화두"는 '성화'와 '칭의'인 것 같습니다. 김 모 교수에 의해 국내 신학계에서도 한차례 일렁인 주제인 것 같더군요. 명절 기간 동안 아버지와 이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속에선 정리가 되었습니다. 두 개념이 완전 떨어진 주제는 아니지만 칭의는 어떤 의미에서 지속성과는 다른 개념이고 성화는 지속성이 있는 개념이라는 것. 칭의는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의롭다 함을 얻었다면(칭의) 나의 구원 그 자체는 그것으로 된 거라는 거지요. 그와 달리 성화는 하나님 앞에 갈때까지 계속 되고, 지식에서 좀 되고 성품에서 좀 된후 다시 지식에서 좀 되고 그 다음 성품에서 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는 우리들은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설사 고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고난은 고난일 뿐 우리는 "전진하는 하나님의 나라"안에서 함께 전진한 다는 것. 고난이건 뭐건 "내"가 "순교자"나 기타 등등의 모습으로 느껴지며 자칫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느껴지고 드러날 수 있는 나의 "의"는 너무도 하나님 앞에 불손하고도 오만하며 이단적이러는 것. 그렇지만 수많은 개혁신학을 하고 목회를 한다는 혹은 그러한 교회의 성도라는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고난"이라는 것 안에 갖히며 그 안에서 헤쳐나가는 "나"에 대하여 얘기하고 마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그래도 맞는 이야기지요. 이 지식을 알게 하심을 감사하면서도 두려워 지지요. 지식만 아는 앵무새가 되어 버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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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02.

현재 시간 오후 11시 18분.

조금 피곤한 저녁이지만,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당신의 밤과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시간과 기록되지 않았던 잊혀질 듯한 과거를 살짝 회상해 본다.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직장을 들어오고 나라에 정식으로 세금을 내고 결혼을 하고 와이프의 배속에는 나의 유전정보를 절반 받아 생긴 아이가 자라고 있고 몇일 있으면 2013년이 끝난다.

앞으로를 막연히 생각한다면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너무도 명백한 한계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늘 바보가 아닌 이상 인간은 만족을 추구하며 만족을 못 느끼며 늘 목마른 상태로 지쳐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나에게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신 이의 긍휼을 생각한다면 그저 그앞에 조용해질 뿐이다. 주일 오후 성경공부 때 들은 것처럼 내 생각에 난 아직도 길가의 밭이다. 돌이 많은 밭 수준도 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기 위해 때때로 노력한다. 그것에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지난 주말에 우리 연구소내 타 팀의 차장님 한 분이 갑작스레 쓰러지셨다고 한다. 5살 먹은 어린 딸과 부인이 있는 단란한 한 가장의 가장인 이 분이 쓰러지셔서 뇌사 상태가 된 후 결국 돌아가셨다. LG화학 기술연구원 OO팀의 차장이자 누구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고 아들이었던 한 사람이 인식의 속도보다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다.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나도 어느 순간 익숙하게 숨쉬고 눈뜨지 못한다는 것, 나는 아니 나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기 힘든 순간에 일어나는 변화. 그 폭은 다이나믹하다. 그 폭 앞에 비관적 혹은 염세적으로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하나님의 자녀라 말하는 사람이니 실상은 인식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저 뚜벅이처럼 앞으로 뚜벅 뚜벅 나아갈 뿐인 게다.

 

아주 아주 조금만 높은 차원에서 내 모습 내 환경 내 주위 일들을 둘러봐도 숨이 너무 잘 쉬어지고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슬며시 미소지으며 마감하는 하루이다.

 

"천지의 대주재이시며 모든 만물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시고 홀로 영광받으시는 주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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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02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주님앞에 무릎꿇을 수 밖에 없도록 인도하시는 주님. 연약한 나의 심령과 양심과 지성과 의지로는 그 무엇도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신다.
연약하나마 바른 판단은 당신께서 주신 지식으로 부터임을 일깨우시는 은혜가 나의 영혼을 잠잠히 적신다.

지나는 하루 하루의 일상에 거저는 없음을 철저히 깨닫게 하시는 은혜앞에 영혼의 골방에서 당신께 기도하오니, 연약한 저의 영혼에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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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1일

아직은 날씨가 차가운 목요일 저녁, 퇴근 후 기숙사 방에 앉아서 내 블로그에 올렸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으며 글을 써 내려가 본다.

 

나의 티스토리 블로그에는 얼마간의 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직은 치기 어린 학부 시절, 대학원 초기 시절의 나의 감정적 변화들이 투박하게 드러나 있다.

 

학부 시절에는 막연히 걱정을 하며 마음을 굳혔던 대학원으로의 진학, 내 인생에서 탁월한 한 수 였던 것 같다. 그 시기가 결국은 계기가 되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으며, 스스로가 좀 더 진보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지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현재의 직장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LG화학 기술원에 들어와 정규적인 직장 생활을 하며 이전과는 다른 (직장과는 상관 없는) 문제들을 맞닥뜨린다.

 

늘 삶의 매 순간은 새로운 문제들로 둘러싸임의 연속이고 그 안에서의 나는 잠잠히 그분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나갈 뿐이다.

 

문득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돌이켜보니 모든 것들이 심각하게 느껴지면서도 소박함의 범주 안에선 아무것도 아님을 상기케 된다.

 

어쨋건 요즘의 하루 하루는 늘 감사함이 가득차 있다. 다만 잘 감사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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