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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s space

music, photograph by ycharlie


2014.02.01

오늘은 2014년 구정 연휴의 마지막 날 입니다. 요 몇일간 바쁜 나날을 보낸 집사람은 배가 부른 채로 비 내리는 저기압에 눌린 듯이 잠이 쏟아진다며 거실 소파에 누워 잠에 들어 있습니다. 뭐랄까 잠을 많이 잤으면서도 나도 잠이 계속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색하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당최 뭔지.

 

내일이면 예배 드리러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옵니다. 저녁엔 대전으로 다시 돌아오고 월요일이 되면 회사에 다시 출근 하겠지요. 다음 주 월요일 아침부터 팀회의가 있네요. 논의하고 계획을 세워야 할 안건들이 있어서 회의가 짧게 진행되진 않을 것 같네요. 아침에 회사에 가자마자 전자현미경 예약을 해야할 듯 하구요.

 

저는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사람입니다.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들을 검증해보지 않고는 단번에 믿지를 않지요. 사람들 이야기도 마찬가지구요. 장점일수도 단점일수도 있는 습관이지요. 실수를 잘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까칠해 보인다는 겉인상을 주기 쉽지요. 특히 기독교적 진리와 관계된 이야기들은 말하는 사람의 "사회적 권위"와 상관없이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가치판단을 마친 후에 받아 들이지요. 그러다보니 더욱 더 견고한 '기준'이 마련되고 그 라인 밖의 지식은 마구 내쳐버리지요. 때론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지식과 사상이지 사람은 아니라고. 한 사람은 소중한 영혼이라고.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 그렇지만 그 생각 자체를 자주 잊어버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매 순간 간구해야 할 부분이지요.

 

요즘 아버지의 "화두"는 '성화'와 '칭의'인 것 같습니다. 김 모 교수에 의해 국내 신학계에서도 한차례 일렁인 주제인 것 같더군요. 명절 기간 동안 아버지와 이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속에선 정리가 되었습니다. 두 개념이 완전 떨어진 주제는 아니지만 칭의는 어떤 의미에서 지속성과는 다른 개념이고 성화는 지속성이 있는 개념이라는 것. 칭의는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의롭다 함을 얻었다면(칭의) 나의 구원 그 자체는 그것으로 된 거라는 거지요. 그와 달리 성화는 하나님 앞에 갈때까지 계속 되고, 지식에서 좀 되고 성품에서 좀 된후 다시 지식에서 좀 되고 그 다음 성품에서 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거치는 우리들은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설사 고난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 고난은 고난일 뿐 우리는 "전진하는 하나님의 나라"안에서 함께 전진한 다는 것. 고난이건 뭐건 "내"가 "순교자"나 기타 등등의 모습으로 느껴지며 자칫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느껴지고 드러날 수 있는 나의 "의"는 너무도 하나님 앞에 불손하고도 오만하며 이단적이러는 것. 그렇지만 수많은 개혁신학을 하고 목회를 한다는 혹은 그러한 교회의 성도라는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고난"이라는 것 안에 갖히며 그 안에서 헤쳐나가는 "나"에 대하여 얘기하고 마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는 것.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그래도 맞는 이야기지요. 이 지식을 알게 하심을 감사하면서도 두려워 지지요. 지식만 아는 앵무새가 되어 버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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